철도차량으로 사탕수수를 수확하는 인도네시아 P.G Semboro 설탕공장



인도네시아에는 설탕공장이 약 60여 개가 있다고 하네요. 그중에서 90% 이상이 자와 티무르에 분포해 있고, 제가 방문했던 젬버(Jember) 지역에는 자티로토역(Jatiroto Railway Station) 바로 앞에 있는 P.G Jatiroto와  탕굴역(Tanggul Railway Station) 과는 거리가 좀 되지만 P.G Semboro라는 설탕공장이 있습니다. 그중에서 저는 P.G Semboro를 방문했는데요.

뜬금없이 웬 설탕공장이냐고요? 아마도 유튜브 알고리즘이 저를 그곳까지 가게 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철도 마니아인 저를 알고리즘이 가만두지 않았겠죠?ㅎ 인도네시아 사탕수수 농장에서 철도차량을 이용하여 사탕수수를 수확하는 영상을 너무나 인상 깊게 봤기 때문입니다.

자티로토역에서 가까운 P.G Jatiroto 설탕공장으로 가지 않은 이유는 자이로토역에 정차하는 열차와 주변에 숙박업소가 너무 부족했거든요. 젬버에는 밤늦게 도착했기에 호텔에서 하루 묵고 다음 날 새벽부터 그랩택시를 호출하여 설탕공장까지 이동했습니다.

 

P.G Semboro 설탕공장에 전시되어 있는 증기기관차

▲ P.G Semboro 설탕공장에 전시되어 있는 증기기관차

설탕공장 입구에 내리자 증기기관차가 제대로 찾아왔음을 확인해 주었습니다. 모양은 증기기관차지만 뒤에 연료탱크가 있으니 디젤로 개조한 것입니다.

공장 정문에는 경비원이 아닌 경찰이 지키고 있는데요. 손짓 발짓 번역 앱까지 총동원해서 방문 목적을 전달하니 어디론가 전화를 하더군요.

어렵게 온 길이라 읍소를 하였지만 공장 견학을 허락받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시종일관 친절을 잃지 않고 대해주시더군요. 이방인이 안쓰러워 보였는지 발길을 돌리는 저에게 농장이라도 둘러보고 가라고 하시더군요.

 

P.G Semboro 사탕수수 농장에 있는 선로 분기기

▲ P.G Semboro 사탕수수 농장에 있는 선로 분기기

끝없이 펼쳐진 사탕수수밭을 거의 한 시간 쯤 헤메다 드디어 선로를 발견했습니다. 분진 속에 은폐하고 있는 분기기가 눈에 생기를 불어 넣었습니다. 특별한 전환 장치가 없는 것으로 보아 대향은 그냥 진입하고, 배향은 밀고(째고 또는 벌리고) 나오는 스프링 방식 분기기로 보입니다.

 

인도네시아 경찰과 P.G Semboro 사탕수수 농장 직원들

▲ 인도네시아 경찰과 P.G Semboro 사탕수수 농장 직원들

농장 직원들과 얘기도 나누고 그들의 사무실도 구경하다 보니 공장 정문에서 보았던 경찰들이 먼 농장까지 다시 찾아와 합류했습니다. 갑작스레 낯선 곳을 찾은 이방인이 신기했던지 연신 사진도 찍자고 하네요.

특히 말수가 적었던 한 분이 “내가 말이 없는 것은 당신을 환영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당신 나라 말을 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라는 번역 화면을 보여줬을 때는 혹시나 내가 그들을 오해하고 있지나 않을지 걱정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와닿아 뭉클했습니다.

그들의 그런 따뜻한 마음 때문에 비록 많은 대화를 나눈 것은 아니지만 빠르게 친해질 수 있었고 덕분에 오후내내 그들과 보내게 되었습니다.

 

P.G Semboro 사탕수수 농장에서 만난 젊은 친구들

▲ P.G Semboro 사탕수수 농장에서 만난 젊은 친구들

마침 이곳 사탕수수 농장을 주제로 유튜브를 운영하는 젊은 친구들도 만날 수 있었는데요.  저에게는 큰 행운이자 인연이었습니다. 나이 차이를 떠나 유튜브라는 공통 관심사가 있었기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P.G Semboro 사탕수수 농장에서 작업중인 모터카

▲ P.G Semboro 사탕수수 농장에서 작업중인 모터카

디젤 모터카가 고장이 났는지 직원들이 분주히 움직이며 살피고 있습니다. 사실 철도차량이 운행하는 환경으로만 보면 너무나 척박한 곳입니다. 단단하지 않고 배수도 원활하지 않은 노반, 줄 간격과 면이 심하게 틀어진 선로, 기계에 치명적인 많은 분진 등 모든 면에서 철도차량이 움직이는 것이 신기할 정도입니다.  철도회사가 아니니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부분일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안전을 위해 조금은 신경을 써야 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드네요.

 

 

P.G Semboro 설탕공장에서 바가스(bagasse)를 실은 철도차량들.

▲ P.G Semboro 설탕공장에서 바가스(bagasse)를 실은 철도차량들

사탕수수에서 당즙을 짜고 난 찌꺼기를 바가스(Bagasse)라고 하는데요. 이 바가스는 2차 가공하여 제분기의 연료, 가축사료, 건축자재 그리고 종이 등으로 다양하게 재사용된다고 합니다. 이곳에서는 제분기의 연료와 농장의 비료로 사용된다고 합니다.

 

 

P.G Semboro 사탕수수 농장의 초소와 입환작업중인 철도차량들

▲ P.G Semboro 사탕수수 농장의 초소와 입환작업중인 철도차량들

왼쪽 건물은 농장을 지키는 초소입니다. 그 뒤로 사탕수수가 자라고 있네요. 다 자란 사탕수수는 무려 6미터 정도까지도 된다고 합니다. 사탕수수밭에 잠깐 들어가 봤는데 제가 왜소하게 느껴지더군요.

설탕공장에서 빈 호퍼카를 끌고 나온 모터카가 바가스를 싣기 위해 다른 선로로 진입하고자 인상선으로 후진하고 있습니다.  즉, 입환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P.G Semboro 설탕공장으로 사탕수수를 실어 나르는 소형 모터카

▲ P.G Semboro 설탕공장으로 사탕수수를 실어 나르는 소형 모터카

농장에서 수확한 사탕수수 대는 위와 같이 작은 트로리와 지지대로 구성된 차량 수십 대를 연결하여 설탕공장까지 옮기게 됩니다.

 

호퍼카에 연료를 싣고 P.G Semboro 설탕공장으로 이동하는 모터카

▲ 호퍼카에 연료를 싣고 P.G Semboro 설탕공장으로 이동하는 모터카

사탕수수를 수확하지 않는 시기에는 바가스를 연료나 퇴비로 만들거나 장비 또는 선로를 정비한다고 합니다.

 

어느덧 해 질 무렵이 되어 돌아와야 했습니다. 공장 입구에서 본 큰 증기기관차가 운행하는 것은 시간과 장소가 맞지 않아 아쉽게도 보지 못했습니다.

다음 방문 때는 정식으로 요청을 하고 사탕수수가 어떤 과정을 거쳐 설탕이 만들어지는지 공장 내부까지 견학을 해보고 싶군요. 아쉬움을 뒤고 하고 발걸음을 돌리고 농장을 벗어나고 있는데 젊은 친구가 오토바이를 타고 와서 기차역까지 태워주겠다고 하더군요. 이 사람들 날 울리려고 작정했나요?ㅠㅠ 너무 고맙고 잠깐이었지만 그곳에서도 한국적인 정을 느낀 하루였습니다.

글을 쓰다 보니 그때 만난 젊은 친구들이 다시 보고싶군요. 다시 방문할 때는 K-믹스커피라도 한 박스 들고 가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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